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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2026-07-11약 6분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글 · 도휘 최원준 (라이프벨 대표, 전인륜학 창시자)

4년 차 내과 전공의 K님(가명)은 동료의 부실한 기록, 뇌사 판정 앞에서 상속을 다투는 보호자, 책임을 떠넘기는 선배를 볼 때마다 치미는 화에 지쳐 코칭을 시작했습니다. 코치는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대신 그 순간 다친 가치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GROW 대화로 세운 60초 자리 벗어나기 약속과, 화를 결함이 아니라 여전히 좋은 의료인이고 싶은 마음의 신호로 다시 본 관점 전환을 기록했습니다.

이 글에서 얻는 것

  • 도덕적 분노는 어떤 가치가 다쳤는지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 판단(누가 옳은가)과 대응(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을 나누면 덜 지친다
  • 반복되는 분노가 수면과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번아웃의 경고음일 수 있다

목차

  1. 01'원래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었는데'
  2. 02그 화,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걸까요
  3. 03코치와 K님이 함께 정리한 약속
  4. 04코칭을 통해 K님이 얻은 것
  5. 05관점이 바뀐 순간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 대표 이미지

응급실 밤 근무를 서본 사람은 압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오히려 가장 솔직한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요. 임종을 앞둔 환자 옆에서 유산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보호자,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마지못해 회진을 도는 동료, 책임질 상황이 오면 슬쩍 후배에게 서류를 떠넘기는 선배. 그런 모습을 매일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화가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요.
그런데 그 화가 나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그건 정의로운 감정일까요, 아니면 다스려야 할 감정일까요. 오늘 소개할 사례의 주인공 K님(가명)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코칭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고객 정보는 모두 가명·각색을 거쳤으며,
실존 인물을 특정할 수 없도록 처리했습니다.

"저는 원래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뭔가 끓어올라요"

K님은 종합병원에서 4년째 내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 남성입니다. 첫 회기에서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구체적인 장면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동료 전공의가 바쁘다는 이유로 의무기록을 대충 작성하고 넘어가는 것을 목격할 때. 둘째, 뇌사 판정을 앞둔 환자의 병상 앞에서 보호자들이 상속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지켜볼 때. 셋째,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후배에게 떠넘기는 선배의 태도를 볼 때였습니다.
K님은 그때마다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고, 몇 번은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말을 던진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뇌사 판정 서류에 서명을 앞둔 보호자들이 병실 문 바로 밖에서 상속 지분을 두고 언성을 높이던 순간이었습니다. K님은 그 순간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결국 참았지만, 그날 이후로도 비슷한 장면을 볼 때마다 같은 말이 되풀이해서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나면 후회가 밀려왔고, 동료들과의 관계는 조금씩 서먹해졌습니다. 밤에는 그 장면들이 떠올라 잠을 설치는 날도 늘었고, 출근길에 오늘은 또 어떤 일로 화가 날까 미리 긴장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예민한 걸까요, 아니면 저 사람들이 진짜 문제인 걸까요." 그는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 도해 2

그 화,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걸까요

코치는 곧바로 "누가 옳은가"를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자체보다, 그 순간 K님 안에서 다친 건 어떤 가치였을까요?" K님은 잠시 생각한 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믿음이요"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코치는 죽음학적 관점 하나를 조심스럽게 얹었습니다. 임종 앞에서는 결국 모두가 같은 무게로 서게 되는데, 살아있는 동안의 우리는 왜 그렇게 다른 태도로 서로를 대하게 되는 걸까요. 정답을 주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K님 스스로 자신의 기준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동시에 코치는 화라는 감정의 양면을 함께 짚었습니다. 화가 난다는 건 K님이 여전히 좋은 의료인이고 싶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화가 반복되고 잠을 갉아먹는다면 그것은 번아웃의 경고음일 수도 있다는 것. 어느 한쪽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그 화는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걸까요?"라는 질문으로 두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었습니다.

2회차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코치는 "그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나요, 아니면 그 상황에서 K님이 할 수 있는 몫만 남아있나요"라고 물었고, K님은 "대부분은 제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라고 인정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코치는 판단(누가 옳고 그른가)과 대응(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을 분리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그 판단과 별개로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나 더 갖고 있어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코치와 K님이 함께 정리한 약속

이 코칭은 총 4회기로 설계되었고, 이 글은 그중 3회차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4회차는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살펴보는 후속 관찰 회기로,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두 번의 대화 끝에, 코치와 K님은 조금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방식이지만 이렇게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목표, 현재 상황, 할 수 있는 선택지, 그리고 실천할 약속— 이 네 가지를 하나씩 짚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 목표: 동료나 보호자의 행동에 매번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내 에너지를 환자를 돌보는 데 온전히 쓰고 싶다.
  • 현재 상황: 최근 3개월간 주 2~3회 정도 강한 분노를 느끼고, 그중 일부는 말로 표출되어 관계가 불편해짐. 수면의 질도 떨어진 상태.
  • 선택지: ① 그 자리에서 즉각 지적한다 ② 감정을 누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③ 화가 올라오는 순간 잠시 자리를 벗어나 60초 정도 호흡을 고른 뒤, "이건 판단인가,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인가"를 구분해본다 ④ 시스템 차원의 문제(예: 의무기록 부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정식 보고 채널을 이용한다.
  • 약속: K님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일단 60초만 자리를 벗어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제 감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 시스템에 보고해야 할 문제인지 구분해서, 후자라면 감정 대신 절차로 풀어보겠습니다." 이 약속을 2주간 실천하고 다음 회기에서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 도해 3

이렇게 정리하니 다소 상담 리포트처럼 딱딱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요, 이 약속을 2주간 실천하고 다음 회기에서 다시 만난 K님은 그 사이 무엇을 느꼈을까요.

코칭을 통해 K님이 얻은 것

"제가 화를 낼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속이 좁을까'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좋은 의사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니 저 자신을 덜 미워하게 됐어요."
"모든 상황에 다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것도 배웠어요. 정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와, 그냥 제가 소화해야 하는 감정을 나누는 연습을 하니까 훨씬 덜 지치더라고요."
"앞으로는 화가 날 때 그 감정을 없애려고만 하지 않고, '이게 나한테 뭘 말해주려는 거지'라고 한 번 더 물어보려고 합니다."

관점이 바뀐 순간

K님이 결정적으로 관점이 바뀐 순간은, 코치가 이렇게 말했을 때였습니다.
"그 화, 어쩌면 K님이 이 일을 아직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그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제 화를 없애야 할 결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코치님이 그걸 다르게 볼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순간 뭔가 울컥했어요."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 도해 4

K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코치님은 제 화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그 화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같이 들여다봐 주셨어요. '그냥 참으세요'라는 말을 들을까 봐 사실 좀 걱정했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도덕적 분노는 참아야 하나요, 표현해야 하나요?

이 사례처럼 정답은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화가 어떤 가치를 지키려는 신호인지 먼저 들여다보고, 판단(누가 옳은가)과 대응(내가 할 수 있는 몫은 무엇인가)을 나눠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GROW 코칭모델이란 무엇인가요?

목표(Goal), 현실(Reality), 선택지(Options), 의지(Will) 네 단계로 스스로의 상황을 정리해보는 코칭 대화 모델입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K님이 도덕적 분노를 다루는 구체적인 약속을 세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의료인 번아웃과 도덕적 분노는 관련이 있나요?

반복되는 분노가 수면과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번아웃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화가 동시에 "여전히 좋은 의료인이고 싶다"는 마음의 신호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한쪽으로만 단정하기보다 두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품어볼 질문

도덕적 분노, 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 전공의 번아웃 코칭 사례 — 도해 5
  1.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습니까.
  2. 그 화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가 지쳐버린 적이 있습니까.
  3. 그 화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건지, 오늘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습니까.

내 안의 화가 무엇을 지키려는지 함께 들여다보고 싶다면

죽음학적 관점과 GROW 대화를 함께 쓰는 싸나토코칭에서, 판단과 대응을 나눠 보는 첫 걸음을 함께합니다.

20분 무료 상담은 줌 또는 방문(노원)으로 일정에 맞춰 잡습니다.

👉 싸나토코칭 자세히 보기: lifebell.kr/thanato-coaching · 무료로 시작하기: lifebell.kr/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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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축약본은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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