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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2026-09-03약 7분

마라톤 5000일을 채운 사람이 예순도 되기 전에 떠났을 때

글 · 도휘 최원준 (라이프벨 대표, 전인륜학 창시자)

매일 달린 사람이 예순도 되기 전에 떠나자 누군가 말했습니다. "거봐라, 소용없다." 이 말은 죽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말한 사람의 불안을 달래는 혼잣말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축적과 그 자체가 목적인 축적은 어떻게 갈라지는지, 과시와 인정 구걸이 왜 같은 뿌리인지를 전인륜학의 정심·정지·정언·정자로 짚었습니다.

이 글에서 얻는 것

  • SNS 인증과 진짜 축적을 가르는 한 가지 질문
  • 과시하는 사람과 인정을 구걸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 이유
  • 이른 죽음 앞에서 원인을 만들어 붙이는 마음의 정체

목차

  1. 01SNS 인증과 진짜 축적은 어떻게 다른가
  2. 02과시와 인정 구걸은 왜 같은 뿌리인가
  3. 03소용없다고 말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4. 04자주 묻는 질문 · 마무리

SNS에 마라톤 5,000일 인증을 올리던 지인이 있었다.
매일 뛴 거리, 완주 메달, 대회 사진을 꾸준히 올렸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예순도 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거봐라, 마라톤 한다더니 저렇게 일찍 갔다. 소용없다."

이 문장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쓴다.
동시에, 마라톤을 그렇게 자랑하던 마음도 함께 들여다보려고 한다.
둘 다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SNS 인증과 진짜 축적은 어떻게 다른가

한 줄로 답하면 이렇다.
내세우기 위한 축적은 밖의 인정을 연료로 쓰고,
축적 자체가 목적인 삶은 그 사람 안의 온전함에서 나온다.
결과물은 똑같이 "5,000일"이어도 뿌리가 다르다.

전인륜학(全人倫學)에서는 이 뿌리를 정심(正心)과 정도(正道)로 구분한다.
정심은 무엇을 위해 이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고,
정도는 그 답이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향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마라톤 자체는 좋은 습관이다.
문제는 마라톤이 아니라, 그 5,000일임을 칭찬받아야 버틸 수 있는 마음이다.
남이 눌러주는 '좋아요'가 없으면 그 축적이 의미를 잃는다면,
축적이 아니라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짜리 차를 샀는지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순간 물어볼 질문은 하나다.
"이걸 아무도 모른다면, 나는 여전히 만족스러운가."

SNS에서 과시하는 사람과 인정을 구걸하는 사람은 왜 같은 사람인가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부분이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은 정반대처럼 보인다.
한쪽은 성과를 자랑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한쪽은 반응이 없으면 불안해하며 존재감을 구걸한다.
하지만 이 둘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두 얼굴이다.

스스로 채우지 못한 것을 밖에서 채우려는 사람은,
채워지는 순간 우월해 보이고 채워지지 않는 순간 왜소해진다.
같은 사람 안에서 매일 오간다.
어제는 완주 사진에 달린 댓글 100개에 우쭐했다가,
오늘은 댓글이 안 달리는 게시물 앞에서 초조해지는 식이다.

반대로 자기 안에서 이미 만족한 사람은 굳이 뽐내지 않는다.
뽐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존재 조화다. 우월해 보이려 애쓰지도, 인정을 구걸하지도 않는 상태.

그러니 SNS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칭찬받는 일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는 편이 낫다.
먼저 나 스스로 그 축적에 만족하고, 그다음 내 곁의 사람들,
배우자, 친구, 동료에게 응원받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
그 순서가 바뀌면 아무리 많이 축적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일찍 떠난 사람을 두고 소용없다고 말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자.
"거봐라, 마라톤 한다더니 저렇게 일찍 갔다"고 말한 그 사람 이야기다.

이 말은 틀렸다.
매일 운동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암에 걸리고 세상을 떠난다.
운동과 이른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든 것은 그 사람의 착각이다.
상관관계조차 불분명한 두 가지를 인과관계로 엮은 것뿐이다.

전인륜학에서는 이런 착각을 정지(正知)의 실패라고 본다.
정지는 아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을 구분하는 태도다.
"마라톤을 해도 소용없더라"는 문장은 알아서 나온 말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급하게 만든 인과관계다.

왜 그런 말이 나올까.
타인의 이른 죽음은 누구에게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도 저렇게 갑자기 갈 수 있다."
이 질문은 통제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원인을 하나 만들어 붙인다.
"저 사람은 마라톤을 무리하게 해서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순간,
죽음은 통제 가능한 일이 된다.

나는 저렇게 무리하지 않을 테니 나는 안전하다는 착각이 생긴다.
결국 그 비꼼은 죽은 사람을 향한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불안을 달래는 혼잣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심판할 게 아니라 이해할 일이다.
심판은 "네가 틀렸다"에서 멈추지만,
이해는 "너도 나처럼 두려운 것이다"로 한 걸음 더 간다.
"소용없다"는 말 대신 무슨 말을 골랐어야 했는지 생각해 보면,
정언(正言)은 결국 이런 순간의 언어를 가리킨다.

불안을 남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자기 불안을 스스로 감당하는 말.
심판하지 않고 이해하는 것, 그 자체가 존재 조화의 태도다.

자주 묻는 질문

SNS에 성과나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가요?

아니다.
문제는 공유가 아니라 순서다.
스스로 만족한 다음에 나누는 공유와, 만족을 얻기 위해 올리는 공유는
겉모습이 같아도 결과가 다르다.
전자는 남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기록이고,
후자는 반응이 없으면 무너지는 연료다.

가까운 사람의 이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원인을 찾아 안심하려 하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라이프벨(주) 대표 도휘 최원준은 죽음학(싸나토코칭)을
코칭에 접목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 앞에서 원인을 만들어 심판하기보다
지금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사는지 되묻는 것이 더 건강한 방향이라고 본다.

인정욕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확인부터가 낫다.

오늘 한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때도
스스로 만족스러운지 물어보는 것.

그 다음은 SNS 속 낯선 이들이 아니라,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하나씩 넓혀가는 것이다.

마무리

축적은 쌓는 것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마라톤 5,000일이든, 통장 잔고든, 자격증 개수든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쌓기 시작하면,
그 축적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낸다.

전인륜학의 정자(正資)는 재물과 자산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말한다.
정자의 핵심은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가진 것을 무엇을 위해 쓰는가에 있다.
그 답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아직 정자에 이르지 못한 것이고,
"내 곁의 사람들과 온전히 나누기 위해서"라면 이미 그 길 위에 있는 것이다.

SNS 밖에서, 실제로 마주 보고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혀가는 일.
그것이 결국 축적을 가장 오래, 가장 든든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혼자 붙들고 있기 어려운 질문이라면

오늘 이 글에서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걸렸다면, 그 문장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알려주는 표시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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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 최원준 대표는 죽음교육지도사이자 한국코치협회 KAC 인증코치로,
상실과 애도에서 삶의 재설계까지 함께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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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로 살아온 시간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글의 축약본은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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