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폴더폰을 다시 꺼내 드나 — 매끈한 가짜와 거친 진짜
글 · 도휘 최원준 (라이프벨 대표, 전인륜학 창시자)
최신형 스마트폰을 두고 20년 전 디지털카메라와 폴더폰을 찾는 현상은 취향이 아니라 실존을 증명하려는 행동입니다. 보정으로 지워낸 것은 결함이 아니라 흔적이고, 흔적을 지우면 매끄러워지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불편함이 왜 자유의 다른 이름인지, 연결의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뤘습니다.
이 글에서 얻는 것
- 완벽해져야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이미 온전하다
- 물리적 버튼이 사라진 세상에서 잃은 것은 편의가 아니라 신체성이다
- 폴더폰은 연결을 끊겠다는 뜻이 아니라 연결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선언이다
목차
- 01왜 완벽한 이미지를 거부하나
- 02결핍은 결함인가
- 03매끈한 화면이 가져간 것
- 04편리함은 왜 사람을 소외시키나
- 05사용자인가, 길들여지는 쪽인가
최신형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20년 전 디지털카메라와 폴더폰을 찾아 중고 장터를 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수와 을지로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AI가 알아서 보정해주는 완벽한 사진을 두고,
초점이 나가고 노이즈가 자글자글한 저화질 사진에 열광합니다.
단순한 뉴트로 유행으로 보기엔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왜 완벽한 이미지를 거부하나?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을 증명하려는 행동입니다.
AI는 완벽을 지향합니다.
잡티 없는 피부, 흔들림 없는 영상, 노이즈 없는 음질.
기술은 우리 삶에서 오류를 제거하려 듭니다.
그런데 오류가 사라진 자리에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무엇이 진짜였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매끄럽게 보정된 피드에는 '나'가 없습니다.
보여지고 싶은 '나'만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현상을 기다리는 그 불편한 시간을 견디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다림과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만이 조작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결핍은 결함인가?
[전인륜학](/insights/existhos/01)의 시선에서 보면 반대입니다.
오류와 결핍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전인륜학은 인간을 결핍을 채워야 할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이미 온전함을 품고 있는 존재로 봅니다.
그 온전함에는 찌그러진 부분도 포함됩니다.
완벽해져야 온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채로 이미 온전하다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보정으로 지워낸 것은 결함이 아니라 흔적입니다.
흔적을 지우면 매끄러워지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매끈한 화면이 가져간 것
우리는 하루 종일 차가운 유리 액정만 만지며 삽니다.
물리적인 버튼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은 누르는 감각을 잃었습니다.
스마트폰의 햅틱은 진동을 흉내 낸 신호일 뿐, 물성이 아닙니다.
사람은 세계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타자기의 키감을 찾고,
LP의 튀는 잡음을 듣고,
종이책의 질감을 찾는 현상은 그래서 취향이 아닙니다.
신체성의 회복입니다.
고글을 쓰라는 세상에 맞서 손끝으로 거친 물성을 느끼겠다는 선택입니다.
편리함은 왜 사람을 소외시키나?
AI 비서가 알아서 식당을 예약하고, 알아서 답장을 씁니다.
편리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 의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불편함은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직접 지도를 보고 길을 헤매는 과정,
서툰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 과정.
이 비효율 속에 나의 의도(正意) 가 깃듭니다.
폴더폰을 쓰는 것은 세상과의 연결을 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연결의 주도권을 내가 쥐겠다는 선언입니다.
알고리즘이 들이미는 알림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원할 때만 열겠다는 정행(正行) 입니다.
사용자인가, 길들여지는 쪽인가
기술 기업은 당신을 더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편안하게 해주는 쪽과 편안해지는 쪽의 관계는
대개 대등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시대에
의도적으로 '수동'을 고르지 않으면
선택은 점점 줄어듭니다.
거창한 저항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들이미는 것을 그대로 받지 않고,
바른 것인지 한 번 걸러보고,
거짓과 진실을 헤아려보는 정도.
그 작은 실천이 주도권을 지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그럼 AI나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도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하고 도구를 쓰는 것과, 도구가 내민 것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불편한 걸 일부러 선택하는 게 비효율 아닌가요?
효율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시간을 아끼는 것이 목적이라면 비효율이 맞습니다.
내 삶의 결정권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시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이런 걸 점검하는 코칭이 있나요?
라이프벨(주)의 전인륜학 기반 라이프코칭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도휘 최원준 대표는 전인륜학 창시자이자 한국코치협회 KAC 인증코치입니다.
[AI 시대에 생각하는 주체로 남는 법](/insights/existhos/09)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오늘 품어볼 질문
- 오늘 내가 내린 결정 중 알고리즘이 먼저 제안한 것은 몇 개입니까.
- 최근 '불편해서' 하지 않게 된 일 중 내가 좋아했던 것이 있습니까.
- 나는 지금 연결의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까, 넘겨주고 있습니까.
주도권을 되찾고 싶다면
수십 년 굳어진 습관은 혼자 깨기 어렵습니다.
무엇에 끌려다니고 있는지부터 함께 짚어봅니다.
20분 무료 상담은 줌 또는 방문(노원)으로 일정에 맞춰 잡습니다.
👉 무료로 시작하기: lifebell.kr/start · 💬 한 줄 문의: 카카오톡 채널 '라이프벨'
완벽하지 않아서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그 찌그러짐이 당신이 AI가 아니라는 증명서입니다.
이 글의 축약본은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